조선시대에도 한자 대신 한글만 쓰자는 말 없었어

한국어 쓴다고 처벌하는 것도 아닌데..일제강점기는 비유는 억지

부산시는 ‘영어 상용화(Common Language)’는 영어를 공식언어로 쓰는 ‘영어 공용화(Official Language)’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부산시는 ‘영어 상용화(Common Language)’는 영어를 공식언어로 쓰는 ‘영어 공용화(Official Language)’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김정민 논설위원]

 부산시의 영어 상용화 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다. 추진 계획 발표가 난 이후, 부산영어상용반대 국민연합에서는 즉각 규탄 성명을 내어 모국어인 한글 가치의 폄하와 영어 사교육 부담 문제는 물론 물론 일본제국주의가 조선 강점기 막바지에 조선인들에게 당시의 국어인 일본어를 상용하게 하려고 온갖 강제와 폭력을 가했다는 사례까지 들어 반대 서명운동까지 나섰다.

 

조선시대에도 한자 대신 한글만 쓰자는 말 없었어

 영어를 논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자랑인 한글에 대해서 먼저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진정으로 한글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것은 의외로 얼마 되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도 한글과 한자를 같이 쓰는 ‘국한 혼용체’가 많이 쓰였다. 요즘 MZ 세대들이 90년대 발간된 신문을 읽으면 상당히 힘들 것이며, 당시 은행 업무를 보는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뒤(後) 세대인 윤석열 대통령도 국한혼용체가 결코 어색하지 않은 세대일 것도 분명하다. 세종대왕의 지휘 아래 1443년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당시 식자층 상당수가 한글 창제에 대해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꼴이라며 극렬히 반대했다. 그렇다면 당시 선비들은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없어서 그랬을까? 아마 그런 주장은 아무도 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 조선의 입장에서 “세계” 그 자체나 다름없는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순수 한글만을 쓸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글 창제 이후로도 지식인들은 모두 한자로 글을 쓰고 소통했다. 교육을 받지 아니한 여성이나 하층민들이 간간이 겨우 한글을 사용했다. 한자를 알아야 출세에 용이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현재 영어 실력이 출세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당시 조선 사회에서, “우리가 만든 한글에 자부심을 갖고 이제 모든 공문서나 사문서에 한글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식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결국 한글이 완전히 국내에서 상용화된 것은 500년이 지나고 나서부터라고 봐야 한다.

 당시 조선에서 만약 누군가가 사대주의에 대한 반발로 한자를 쓰지 말고 한글만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역사에 어리석은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어 상용화를 사대주의나 제국주의로 규정짓는 논리는 지나치다. 국제 공식 공용어인 영어를 상용화하여 엑스포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아울러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가치 증대를 도모한다는 궁극의 목적을 놓고 단순히 한글의 가치를 깎아내린다고 해석하는 것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해석이라는 것이다. 그런 논리대로 라면 우리나라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는 수많은 교육기관과 교육자들을 비애국(非愛國) 행위를 하는 것으로 단정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것이 훌륭하다고 해서 다른 문화의 국내 활성화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라 볼 수 있겠다.

 

한국어 쓴다고 처벌하는 것도 아닌데..일제강점기는 비유는 억지

 일제강점기의 사례에 비유한 것도 상당히 억지스럽다. 일반 시민이 영어를 쓰지 않고 한국어를 쓰면 강제적 처벌을 한다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이 상황을 일제가 우리에게 감행한 언어 말살정책에 비유한다는 것은 지나친 민족주의 감성에 흠뻑 젖어 확증편향을 갖게 만드는 의도가 엿보인다. 실제로 대다수의 우리나라 사람이 글을 접할 때, '일제''제국주의'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 글의 전체적 맥락과 논리는 제쳐두고 ‘치트키’처럼 해당 글의 전체 내용에 대해 극렬하게 ‘묻지 마 동의’를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상용화한다고 해서 우리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실제로도 적다. 1997년부터 초등학교에서도 본격적으로 영어교육을 실시했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세대는 지금 성인이 되었다. 그들 세대에서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정체성이 없어졌다고 볼 수 있는가?

 20년 전만 해도 ‘국제화’나 ‘세계화’가 여기저기서 지겹도록 들렸던 것 같은데 요즘은 뜸하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너무도 당연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시각각 다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내부적 갑론을박만 펼치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적지 않음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글 공부 좀 했다는 조선 선비들은 세계정세를 공부할 생각 않고, 공자왈 맹자왈만 거듭하다가 일제에 병합되는 굴욕을 맛봤고, 현대에서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국내에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만 읊다가 IMF를 맞았다. 한국이 GDP 10위의 경제대국이고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소수의 일류 기업들이 국제적으로 선두 위치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다고 해서 세계화가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환상이다. 여기서 멈춰서 이런 감상에만 젖어만 있으면 안 된다. 굴욕의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아직도 우리가 세계화에는 부족하다는 일념으로 더더욱 외국과의 접촉을 늘려야 하고 그들과 소통해야 한다. 그들을 배워야 한다고 해서 우리가 굴욕적이라 여길 필요도 없고, 저(低)자세에 있는 것처럼 여기며 자존심 상해 할 필요도 없다. 앎은 곧 힘이고 지피지기면 백전 불태라고 하지 않던가.

 특정 도시의 영어 활성화 전략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정치권에서 실행을 하였다가 실패로 끝나거나, 종종 만지작거렸다가 반발을 우려해 실행을 하지 못한 카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국민들이 한글에 남다른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뿐만 아닌 해외의 권위 있는 언어학자나 역사학자들도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고, BTS 등 대중문화 예술이 해외로 뻗어나가면서 자연스레 한글도 홍보가 되었다. 이로 인해 한글을 배워보고 싶다는 외국인들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자부심을, “영어 상용·활성화 정책은 한글문화 폄훼다”라는 개념으로 대입 시켜서는 곤란하다. 이미 아시아의 여러 도시에서 영어 활성화 정책을 성공시킨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중국도 포함해서 말이다. 물론 우리 문화와 전통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훌륭하다. 그러나 그 훌륭한 마음이 조선의 '쇄국정책'처럼 연결된다면,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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