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주자와 관객의 감정

 

[여지원 칼럼니스트]
 

감정과 예술은 같이 얘기되곤 한다. 학자마다 얘기가 다르지만 나는 관객을 감정이입시키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퍼포먼스하는 사람 즉 공연, 연주, 무용, 굿 등을 하는 그 당사자는 감정이입을 해야할까? 하지 말아야할까? 경우의 수가 여러가지 있다.

아주 쉬운 예로 유머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어떤 사람을 웃기기 위해 농담을 한다고 치자. 근데 개그를 하는 사람이 웃어버리면 힘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다른 사람을 웃기려고 하는데 자기가 웃어버리면 아무리 웃긴 유머라도 안 웃긴다.

반면 웃기려는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너무나 웃긴 얘기를 하면 되레 굉장히 웃긴 경우가 있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긴 얘기를 하지? 하면서 웃음을 증폭하는 효과가 있다.

음악도 비슷한 면도 있고 대조되는 면도 있다.

고전주의(18세기,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 시대의 음악은 형식과 엄격미를 중요시했다. 그때는 연주자가
굉장히 낯설고 거리를 두고 철저하게 포커페이스하면서 함부로 그 곡에 말려들어가지 말고 절제되고 엄숙하게 연주해야 한다. 그걸 들은 관객이 어떤 정화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 고전시대 음악을 연주자가 되레 감정이입하고 지나치게 몰두하며 표정이 변하면 관객들이 깬다. 마치 웃긴 유머를 자기가 웃으면서 얘기해 안 웃긴 것 처럼.

웃긴 사람을 표정을 막 바꿔서 유머가 온전하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역할하는데 그쳐야 한다. 그것이 고전시대의 음악이나 작품을 다룰 때 조심해야 하는 점이다.

반면 낭만시대(19세기, 로맨틱한 음악 쇼팽, 슈베르트)는 조금 다르다. 감정을 굉장히 중요시했다. 낭만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랑 혹은 솔직한 자기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대이다. 이 경우에는 연주자 또한 감정에 몰입할 수도 있다.

잘 보면 낭만 시대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 표정을 보면 굉장히 일그러져 있고 진짜 곡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하기도 한다. 특유의 예술가라고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 -고뇌, 천재, 신들림-가 바로 낭만 시대에 등장한 것이다.
연주자나 감상자 개인차도 있다. 같은 표현인데도 누구는 과장되었다고 생각하고 덜 표현한다고 볼 수도 있다. 무대 차도 있는데 무대는 넓으면 자기가 전달하려는 바가 아무래도 왜곡되어 전달되기도 하기때문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아주 조금씩 바꾸기도 한다.

여하간 단순하지 않다. 여러 변수를 생각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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